독립기념관 일본근대의 보도판화는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
일본의 역사왜곡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역사왜곡교양서 시리즈
 
이 상태 기자

❍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내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일본역사왜곡교양서 시리즈를 기획하고 이번에 그 1권인『일본근대의 보도판화는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한국어판 및 일본어판을 발간하였다.
▲     © 이 상태 기자



    (발간일 : 한국어판 8월 29일/일본어판 : 9월5일)

❍ 독립기념관 측은 최근 일본에서 한국사를 왜곡한 서적 출간 및 일제 강점 지배를 미화한 우익의 논조가 강화되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 시리즈의 발간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소책자 형식을 취하여 일본역사왜곡의 실상을 주제별로 알기 쉽게 논증하고 있다. 

❍ 『일본 근대의 보도판화는 한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는 19세기 후반기 일본에서 시각미디어로서 일본대중에게 각광을 받은 「보도판화(니시키에-錦繪)」가 당시 한국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왜곡 보도했는지를 자세히 논증했다.

❍ 집필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일본역사왜곡문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윤소영 연구위원이 맡았다. 이 책에는 91컷의 도판자료가 사용되어 주목을 끌고 있는데 이것은 KBS 방송국 춘천 지국에 근무하는 남주현 씨의 개인소장자료와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에 주로 의거한 것이다. 

■ 보도자료 전문(추가자료)

❍ 「보도판화-니시키에」는 동시대에 중국과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 특유의 대중적인 보도매체였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급박한 소식이 있을 때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목판 다색판화이다.

❍ 한국과 관련한 보도판화의 제작은 1875년 운요함 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1877년 정한론 관련, 1882년 임오군란, 1894년 청일전쟁, 1904․5년의 러일전쟁으로 이어진다.

❍ 이 보도판화는 당시 활자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토대하여 화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당해 사건을 시각화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 보도판화에는 이중 삼중의 왜곡 장치가 교묘하게 숨어 있음에도 대중은 이를 사실로 믿었다는 점에 있다.

❍ 일본근대의 보도판화는 일본 대중에게 왜곡된 한국인식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일본역사왜곡이 일부 일본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중 전체에 스며들었던 것이며 여기에 일본역사왜곡의 뿌리의 심각성이 있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 이 보도판화의 왜곡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애당초 정보의 발신원인 근대 일본 정부가 한국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사건을 왜곡한 내용을 신문사에 제공한다.

‣둘째, 신문사는 이를 정부소식통에 입각한다는 근거를 내세워 신문에 게재한다.

‣셋째, 보도판화(니시키에) 화가는 신문기사에 토대하여 다시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건을 더욱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화폭에 담아낸다. 보도판화에는 신문기사 내용 등에 입각한 설명문을 적는데 예를 들면 사건 발생한 일시를 적거나, ‘들은 대로 기술한다’ ‘oo가 보낸 전보문’이라고 하는 등의 전거를 밝힌다.

‣넷째, 대중은 이 보도판화를 보고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 ‘정말 조선에서 일어난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섯째,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임오군란과 청일전쟁을 다룬 대중 연극으로 재생산되어 대중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여섯째, 여기에 기왕의 왜곡된 한국인식(고대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거나,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의 맹수인 호랑이를 퇴치했다거나 하는 설화에 토대한 우월감)과 함께 근대 일본정부 어용학자의 한국침략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에 토대한 역사교육이 결합한다.

‣일곱째, 이리하여 왜곡된 한국인식은 다시 보도판화를 매개로 하여 시각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확고부동한 사실‘로 각인된다.
 
❍ 구체적으로 왜곡된 내용을 살펴보면 「운요함 병사가 조선 강화도에서 싸우는 그림」은 1875년 강화도에 불법 침입하여 영종진을 약탈 방화했던 일본 운요함 사건을 그린 것인데 이 그림에는 일장기를 게양하고 있고, 일본 병사는 청년으로 늠름한 모습인 반면 조선의 병사는 노인으로 쇠약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붙임자료1)

❍ 실제로 운요함 사건은 조선과 수호조약 체결 시 조선을 압박할 구실을 찾기 위해 일본 측이 계획적으로 도발하여 국기도 게양하지 않고 새벽에 영종진에 상륙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바로 퇴거한 사건이어서 당시 조선 정부는 이것이 일본의 소행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일본이 일장기를 게양하고 정정당당하게 항해하던 중에 강화도에서 부당하게도 조선 측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의 병사들이 늠름하게 싸운 것으로 묘사했다.

❍ 임오군란 당시 조선의 군민이 일본공사관을 습격하는 그림인 「조선변보」(붙임자료2)는 마치 조선인이 일본공사관에 불을 지른 것처럼 왜곡 보도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일본 공사의 정식 보고에는 조선의 군민이 불을 질렀다고 보고한 내용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신문에 제공된 기사에는 조선인이 일본공사관에 불을 질렀다고 왜곡보도된 점이다. 그리고 보도판화는 이를 선정적으로 표현하여 화염에 휩싸인 일본공사관의 모습을 그렸다. (붙임자료-3 조선변보제1)

❍ 그리고 당시 일본공사관 건물은 한옥이었음에도 니시키에 화가는 이를 서양식 건물로 묘사하여 일본은 문명국이요, 일본영사관에 불을 지른 한국인은 ‘야만’이라고 대비시켰다. 임오군란 때에는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에게 독살되었다는 오보가 일본에 전해져 이것을 형상화한 그림에는 흥선대원군이 선혈이 낭자한 칼을 쥐고 있어서 무자비하게 왕비를 죽였음을 암시했다.

❍ 청일전쟁 때에는 전쟁의 구실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일본 측이 1894년 7월 23일 경복궁을 무력점령하고 고종을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마치 고종의 요청에 따라 일본공사와 일본군이 흥선대원군을 호위하며 경복궁에 입성한 것처럼 미화하는 그림을 그렸으며(붙임자료 4),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조선의 정치가와 백성이 모두 환영하는 그림을 그려 실제상황을 왜곡했다. (붙임자료 5) 그리고 이 전쟁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전하였다.

❍ 러일전쟁의 명분도 ‘동양평화’를 위해서라고 선전되었지만 전쟁 승리 후 제작된 승전기념 그림 세트에는 벌써 한국의 영토에 일본과 같은 분홍색으로 채색함으로써(붙임자료 6)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한국의 영토 침략에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뿌리는 넓고도 깊다고 지적한다. 근대일본이 출발 단계에서 국가발전의 방향을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두 ‘일본-정의’ ‘조선-불의’라는 등식으로 설정하여 일본대중에게 선전했고 그것을 보도판화가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더욱 증폭시켰다는 것, 거기에 또한 당시 일본은 이미 침략을 미화한 역사교육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서로 결합한 상황 속에서 일본 대중의 한국인식은 왜곡덩어리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따라서 저자는 맺는말에서 일본의 역사왜곡은 침략을 발판으로 하여 전개된 일본근대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오늘날 일본인들이 근본적으로 성찰해야만 역사왜곡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이 주변 국가를 배려해야 하는 당위성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일본 자신이 과거의 군국주의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만 전쟁으로 인해 자국민과 타국민을 모두 만신창이로 몰아간 과거와 결별하고 일본의 밝고 미래지향적인 역사를 일궈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이 책의 한국어판은 국내의 초중고 역사 교사 및 대학 및 공공 도서관에 우선 배포되며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일반인에게도 제공된다. 한편 일본어판은 일본 내 대학 도서관 및 한국학연구기관, 일본 내 초중고 교원조합, 평화운동시민단체 등에 배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어판의 번역은 충남대학교 박미경 교수가 담당했다.

❍ 이 역사왜곡 교양서 시리즈는 매년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발간되며 내년의 주제는 『한국병합은 강제되지 않았나?』(가제)가 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입력: 2014/09/02 [22:05]  최종편집: ⓒ ccnweek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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